20200801 初志一貫キム·ジュンス「ありのままの私、歌う時は泣きそう」千の顔のチョン・ミドも「捨てられたロボットなのに少し愛しい」

初志一貫キム·ジュンス「ありのままの私、歌う時は泣きそう」千の顔のチョン・ミドも「捨てられたロボットなのに少し愛しい」(20200801記事)
초지일관 김준수 “있는 그대로의 나, 외칠 땐 울컥” 천의 얼굴 전미도 “버려진 로봇인데 좀 사랑스럽죠”
(ジュンス部分のみ抜粋)

元記事

ミュージカル「モーツァルト!」主演キム・ジュンス
10年前の良かった初めての思い出
自分だけの発声と唱法で勝負
今は台本だけ見ても絵が浮かび上がる
뮤지컬 ‘모차르트!’ 주연 김준수
10년 전 좋았던 날것의 첫 추억
나만의 발성과 창법으로 승부
이젠 대본만 봐도 그림 떠올라

ミュージカルの代表チケットパワー、キム・ジュンス&チョン・ミド
コロナ19で公演界が低迷陥ったが、ウイルスも泣いていくチケットパワーがある。ミュージカル「モーツァルト!」(23日まで世宗文化会館)のキム・ジュンス(34)と「多分ハッピーエンド」(9月13日までイエス24ステージ)のチョン・ミド(38)だ。最高アイドル出身キム・ジュンスは作品の初演10周年とミュージカルデビュー10周年を同時に迎えた。2006年にデビューしたチョン・ミドも初めて主演したドラマ「賢明な医師生活」で大きな愛を受けて再びミュージカルの舞台に戻ってきた。
뮤지컬 대표 티켓 파워, 김준수 & 전미도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침체에 빠졌지만, 바이러스도 울고 가는 티켓 파워가 있다. 뮤지컬 ‘모차르트!’(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의 김준수(34)와 ‘어쩌면 해피엔딩’(9월 13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의 전미도(38)다. 최고 아이돌 출신 김준수는 작품의 초연 10주년과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동시에 맞았다. 2006년 데뷔한 전미도는 처음 주연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로 큰 사랑을 받고 다시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ひたむきな男キム・ジュンス
한결같은 남자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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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始一貫している。どのような作品でも瞬間ごとに全力で演技して全身で歌って「キム・ジュンスによる、キム・ジュンスのための」舞台にしてしまう。そんな彼にも「モーツァルト!」は格別である。前所属事務所との契約紛争で国内活動は出来ない、海外を転々としていた彼を華やかに復帰させ、国内外のアイドルファン層にまで観客底辺を拡大して「ミュージカル韓流」の開始点となった作品なのである。
한결같다. 어떤 작품이건 매 순간 온 힘으로 연기하고 온몸으로 노래하며 ‘김준수에 의한, 김준수를 위한’ 무대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그에게도 ‘모차르트!’는 각별하다. 전 소속사와의 계약 분쟁으로 국내 활동을 못 하고 해외를 전전하던 그를 화려하게 복귀시켰고, 국내외 아이돌 팬덤으로까지 관객 저변을 확장하며 ‘뮤지컬 한류’의 시작점이 된 작품이라서다.

先月29日に会った彼は、「不本意ながらインタビューをすることになって緊張している」としながらも、これまで閉じ込めていた話を吐き出した。「10年前のその気持ちで取り組んでいます。技術的な面では当然良くなっただろうが、その時は全く磨かれていなくても作品に私を落とし込んだような感じだったんです。発展した姿もお見せするべきだが、なまの感覚が良かった記憶のため、その感性を引き出そうとしています。」
지난달 29일 만난 그는 “본의 아니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 떨린다”면서도 그동안 담아둔 이야기를 쏟아냈다. “10년 전 그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기술적인 면으로는 당연히 좋아졌겠지만, 그때는 전혀 닦이지 않았어도 작품에 저를 퐁당 던진듯한 느낌이었거든요. 발전된 모습도 보여드려야겠지만, 날것의 감각이 좋았던 기억 때문에 그 감성을 끄집어내려고 하고 있죠.”

10年前に突然ミュージカル界に飛び込んだアイドルはすべてが初めてだった。しかし、あえて務める必要はなかった。作品が彼自身の状況と全く似ていたからである。「新しいジャンルに挑戦することを恐ろしかったんですよ。ところが、台本を見ながら自分の苦しさというか、言葉で説明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気持ちを「黄金星」「なぜ私を愛していないのですか」というナンバーの中で発見しました。もし成功出来なくても、観客の前でこれを歌う事が出来るなら気まずさが解消されるという思いで挑戦することにしました。台本の中にそのまま私を入れ込んだら簡単に同化され、自然に陥る事になりましたよ。」
10년 전 느닷없이 뮤지컬 판으로 뛰어들게 된 아이돌에게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하지만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다. 작품이 그 자신의 상황과 똑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가 두려웠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보면서 저의 답답함이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기분을 ‘황금별’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라는 넘버 속에서 발견했어요. 혹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관객 앞에서 이걸 부를 수 있다면 찜찜함이 해소되겠다는 생각에 도전하기로 했죠. 대본 안에 그냥 저를 대입하니 쉽게 동화되고, 저절로 빠져서 하게 되더라고요.”

音楽もほとんどミュージカル曲だけ探して聞いて
음악도 거의 뮤지컬 곡만 찾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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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の中モーツァルトの苦悩は「父」から起因する。レオポルドは息子の天才を自分の制御に閉じ込め決して自由に飛びたたせない。 「産んでくれた、育ててくれたと言っても全ての事を制御するのはちょっと違うでしょう。息子が夢を広げていく事が出来るようサポートをするべきで、なぜ自分の枠の中に閉じ込めようとするのか?そのような考えをたくさんしました。 「なぜ私ありのままを見てくれないのか」という歌詞は、10年前も今も歌う度にこみ上げてきます。公演しながら私の鬱憤まで解消されて、エネルギーも受けました。内心でくよくよしていた言葉をモーツァルトを介して叫びながら多くの勇気を獲得しました。」
작품 속 모차르트의 고뇌는 ‘아버지’에게서 기인한다. 레오폴드는 아들의 천재성을 자신의 통제 안에 가두고 결코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놔주지 않는다. “낳아줬다고, 만들어줬다고 모든 걸 통제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아들이 꿈을 펼쳐나갈 수 있게 서포트를 해줘야지, 왜 자기 틀 안에 가두려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나’라는 노랫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를 때마다 울컥하죠. 공연하면서 제 울분까지 해소되고 에너지도 받았어요. 속으로 끙끙 앓던 말을 모차르트를 통해 외치면서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モーツァルト!」で歩き始めたとすれば、そびえ立ったのは「エリザベート」の時だ。 2012年ザ・ミュージカルアワードで主演男優賞と人気賞を受賞して「東方神起シアジュンス」ではなく「ミュージカル俳優キム・ジュンス」と呼ばれ始めた。「事実「エリザベート」にキャスティングされたとき悪口をすごく言われました。世界的に「死」の役割は重厚な40〜50代が担当していた、20代のアイドルのタイトルを横取りしたので良くなかったのでしょう。しかし、「死」という無形の存在を自分なりに中性的なキャラクターで消化して賞を受け、私以降は、若い人たちの役になったとして自負心を持つ様になりました。その時ミュージカルで頑張ってみたいと決心したんです。その後はほぼミュージカルにはまって過ごしています。音楽もミュージカル曲だけ探して聴いているほどです。」
‘모차르트!’로 걸음마를 시작했다면, 우뚝 선 건 ‘엘리자벳’ 때다. 2012년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수상하며 ‘동방신기 시아준수’가 아닌 ‘뮤지컬배우 김준수’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실 ‘엘리자벳’에 캐스팅될 때 욕을 엄청 먹었어요. 세계적으로 ‘죽음’ 역할을 중후한 40~50대들이 맡고 있었는데, 20대 아이돌 타이틀로 꿰찼으니 안 좋게 보였겠죠. 하지만 ‘죽음’이란 무형의 존재를 제 나름대로 중성적인 캐릭터로 소화해서 상도 받고, 제 이후로는 젊은 사람들 역이 됐다고 해서 자부심도 갖게 됐어요. 그때 뮤지컬로 잘해보고 싶다고 다짐한 것 같아요. 그 후로는 거의 뮤지컬에 빠져 지내요. 음악도 뮤지컬 곡만 찾아 들을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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ミュージカル俳優として「態勢転換」をしながら持った最大の悩みは、歌のスタイルだった。声楽発声が標準だった当時ミュージカル界でキム・ジュンス特有のメタリックな発声とロックンロールスタイルの唱法は飛びすぎてあまりにも目立った。 「今でも海外ツアーに行けば私の声が珍しいとびっくりされるんですよ。歌えば上手だという話を聞くほど私の声が弾けているみたいです。さらにミュージカルでは異質感が大きいだろうという心配が多かった。 「モーツァルト!」の練習時には、私自身が確立出来ていないので、私も知らないうちに声楽唱法を何度も変えて歌っていたようです。その時のユ・フィソン演出様のアドバイスを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 「ジュンス、真似るな。好き嫌いは誰にでもある。君のスタイルを聴きたい人のために君だけの独自の武器を生かす路線を決めなさい」と言う事でしたが、その言葉がエウレカ(発見)でした。ミュージカルにどのようにアクセスするかを認識され、その後、他の作品でも勇気を出して私の個性を生かす道を見つける事ができましたよ。」
뮤지컬 배우로 ‘태세 전환’을 하며 갖게된 가장 큰 고민은 노래 스타일이었다. 성악 발성이 표준이던 당시 뮤지컬계에서 김준수 특유의 메탈릭한 발성과 로큰롤 스타일의 창법은 튀어도 너무 튀었다. “지금도 해외 투어를 가면 제 목소리가 특이하다고 깜짝 놀라거든요. 창을 하면 잘하겠다는 얘길 들을 정도로 제 소리가 튀나 봐요. 심지어 뮤지컬에선 이질감이 클 거라는 걱정이 많았죠. ‘모차르트!’ 연습 때만 해도 나 자신이 확립이 안 되니 저도 모르게 성악 창법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매번 다르게 부르고 있었나 봐요. 그때 유희성 연출님의 조언을 잊을 수 없어요. ‘준수야, 따라하지 마라. 호불호는 누구에게나 있다. 네 스타일을 들으려는 사람을 위해 너만의 무기를 살리는 노선을 정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유레카였어요. 뮤지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깨닫게 됐고, 그 후 다른 작품에서도 용기를 내 저의 개성을 살리는 길을 찾을 수 있었죠.”

上辺だけじゃなくありのままを見せたい。
가식 아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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すべての舞台で神懸かりの演技を見せてくれるが、別に演技を学んだことはない。作品ごとにぶつかりながらノウハウをきちんと積み上げていくだけだ。 「初期にはセリフがとても難しかったです。歌や振り付けに感情を表出するのは東方神起の頃から上手という話を聞いて、セリフの恐怖をなくしたのは創作ミュージカル「ディセンバー」の時でしょう。ほとんど演劇に近いほどセリフが多くて怖じ気づいたが、チャン・ジン演出様に叱られてから恐れが消えました。そういえば一度も簡単にした作品がありませんでしね。少しずつ成長して鍛えられているようです。」
모든 무대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지만, 따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다. 작품마다 부딪히며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갈 뿐이다. “초기엔 대사가 너무 어려웠어요. 노래나 안무로 감정을 표출하는 건 동방신기 시절부터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대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건 창작뮤지컬 ‘디셈버’ 때죠. 거의 연극에 가까울 정도로 대사가 많아 겁먹었는데, 장진 연출님에게 혼나면서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쉽게 한 작품이 없었네요. 조금씩 성장하고 다듬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デスノート」「エクスカリバー」などの大型創作物を含めて10年間8本のミュージカルを経て、今は台本を見たら絵が浮かぶ境地に上がった。 「前は台本さえ見れば落ち着かなかったが、今はすぐに「ああ、このようにすれば良い」絵が描かれます。演技ノートをよく書く俳優を真似してみたりもしたが、いざ実践には適用されませんでした。 「エリザベート」の「死」も重厚な男性のスタイルにしようと思ったらゲームにならないんですよ。長所どころか短所に見えるから。長所を浮き彫りに出来る演技を私の感覚に委ねることにしたんです。作品に陥って見ればそんなことが出てくるんですよ。 「デスノート」や「ドラキュラ」も数百回練習する時はダメでしたが、最初のステージに立つ瞬間自然に出てきたりもしました。あまり研究することより、私の感覚を信じ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です。」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등 대형 창작물을 포함해 10년간 8편의 뮤지컬을 거치며 이젠 대본만 봐도 그림이 떠오르는 경지에 올랐다. “전에는 대본만 보면 심란했는데, 이젠 금방 ‘아,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 그림이 그려져요. 연기 노트를 꼼꼼히 적는 배우를 따라해 보기도 했는데, 막상 실전에는 적용이 안 되더군요. ‘엘리자벳’의 ‘죽음’도 중후한 남성 스타일로 하려고 보니 게임이 안 되겠더라고요. 장점은커녕 단점만 보일 테니까.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연기를 제 감각에 맡기기로 했죠. 작품에 빠지다 보면 그런 게 나오거든요. ‘데스노트’나 ‘드라큘라’도 수백번 연습할 때는 안되다가 첫 무대에 서는 순간 저절로 나오기도 했어요. 너무 연구하는 것보단 제 감각을 믿어야 하나 봐요.”

放送への未練がないわけではない。 10年以上放送出演できず、不本意ながら固まった神秘主義から脱離したいからだ。 「収録日まで決まってキャンセルされる過程が繰り返され、ある瞬間から催眠をかけるように諦めたが、「放送を自分の意志でしないと思った」というあるPD様の言葉に頭を一発殴られたようでした。私は遊び心が多く10年前のままだが、放送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しないので、ある瞬間人間味なく自己陶酔に陥った芸能人になっていますね。軍隊に行って、私のイメージがそうだと初めて分かりましたよ。親しくなったの後に言ってくれました。放送に裁判や財産の話だけ出てくるから非人間的だと思っていたそうです。驚いて意思疎通がさらに切実になりました。そんなイメージは変える自信があります。飾りではなく、あるがままを見せたいんです。」
방송에 대한 미련이 없진 않다. 10년 이상 방송 출연을 못 하면서 본의 아니게 굳어진 신비주의를 탈피하고 싶어서다. “녹화 날까지 잡아놓고 취소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최면 걸듯 포기하게 됐는데, ‘방송을 자의로 안 하는 줄 알았다’는 어떤 PD님 말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저는 장난기 많은 10년 전 그대로인데, 방송으로 소통을 안 하니 어느 순간 인간미 없고 자아도취에 빠진 연예인이 돼 있더군요. 군대에 가서 제 이미지가 그런 줄 처음 알았죠. 친해진 뒤에 말해 주더군요. 방송에 재판이나 재산 얘기만 나오니까 비인간적인 줄 알았대요. 놀라서 소통이 더더욱 절실해졌어요. 그런 이미지는 바꿀 자신 있거든요. 가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しかし、ミュージカルへの愛情は格別である。大変な時期「最後の刀一本」のような存在が舞台だったからである。 「太い綱のようにつかんできましたが、時間が経って振り返ってみると創作もして、うまくやってきた事に満足していました。たまに自分で感心したり(笑)愛されただけお返ししたい心です。ミュージカル界の為になる人になりたいし、ミュージカルを通じて第2の夢もよく広げたいです。」
하지만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힘든 시기 ‘마지막 칼 한 자루’ 같은 존재가 무대였기 때문이다. “동아줄처럼 붙들고 왔는데,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나름 창작도 하고 잘해온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어요. 가끔 스스로 기특하기도 하고.(웃음) 사랑받은 만큼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뮤지컬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뮤지컬을 통해 제2의 꿈도 잘 펼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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